요즘 어딜 가도 먼지 안 이는 곳이 없다. 인도는 타일이 여기저기 널브러져있고, 소방도로는 깎아내서 아스팔트를 새로 깐다. 길가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다. 건조하니 먼지가 더 하다. 티브이에서는 앵커가어디에 산불났다며 일 주일에 한 번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도를 한다. 시내는 이미 바짝 말라서 물이 흐르던 바위에 뿌연 먼지만 쌓였다.
지금은 가뭄이지만, 그다지 패닉에 빠질만큼의 가뭄은 아니다. 채소와 과일 값이 천정부지로 뛴다. 참외 한 알이 천원이다. 감자 한 알도 천원이다. 잎이 마른 작은 배추 한 포기도 천원이다. 사과 한 알에 천오백원이다. 식탁물가에 비상등이 켜졌다. 비상등은 켜져도 돈을 더 지불하면 쌀과 채소와 과일을 살 수 있다. 패닉에 빠지진 않는다.
과학과 자본주의가 없던 삼국시대에 왕이 가뭄에 대하는 방식은 다채롭다. 신라의 왕들은 대부분 창고를 열어 궁휼하고, 하던 공사를 멈추고, 죄수를 용서해 주었다,고 한다. 늙그막의 진평왕이 한 번 용을 그려서 비를 빌었다. 백제의 왕들 중에는 무령왕이 유일하게 창고를 열었고, 그 외에는 신하들의 간청이 있거나 없거나 간에 대부분 방관하였다. 그 결과 백성들이 자식을 팔거나, 서로 잡아먹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구려의 왕들도 백제의 왕들과 가뭄에 대처하는 방식이 대동소이하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가뭄에 산불이 잦으면 왕이 기후제를 드리기에 이른다. 이것은 비과학적이긴 하지만 심리적인 압박을 해소하는 좋은 방법임에 틀림없다.
한편으로 티브에서는 첨단의 기술과 인공위성과 유인 우주선을 타고 화성에 갈 것을 예고하고, 인터넷으로 수잔 도일의 천사같은 목소리에 감동한다. 새삼 오붓한 마을쯤되는 과학이 잘 컨트롤 하는 지구가 간인된다. 하지만 지금 과학의 수준이란, 슈퍼컴퓨터를 써서 '맑음', '흐림', '비' 라는 33%의 확를 중 하나를 간신히 예측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제 가뭄이 와도, 대통령이 기우제를 드리지 않아도, 창고를 열지 않아도, 그저 식탁물가 잡으라고 호통을 쳐도, 누구도 삼국시대같은 패닉상태에 빠지지 않는다. 자본은 자연의 변화에 대한 좋은 완충제 역할을 한다. 가뭄에는 그저 가격이 슬금슬금 오를 뿐, 쌀도 채소도 언제나 총각네 야채가가에 쌓여있다.
Trackback URL : http://janthina.tistory.com/trackback/139